창업록: 100일

창업록: 100일

마지막 회고 이후 100일가량이 지났다. 90일 뒤에 쓰고 싶었는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기록을 남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Rize는 주 80시간을 뚫고 나갔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척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일만 있을 수가 있겠는가? 개 같이 하는 건 맞는데, 잘 하고 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 같다.

파트너

팀에 세 파트너가 생겼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팀을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레퍼런스 체크를 위해 주변 여러 분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나의 모습을 잘 아는 분이 누구일지 고민을 많이 해서 전달해 드렸다. 나와 팀을 꾸렸지만 깨진 사람들이라든지, 과거에 함께 창업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개발자로서 함께 일해봤던 사람에게 부탁을 드렸다. 아마 좋은 얘기들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파트너분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만에 과거에 창업했던 대표님, 친구, 동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처음 창업을 시작할 때쯤에는 반드시 PMF 비슷한 거라도 찾고,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도 이물감이 드는 포인트인 것 같다. 약간 더 초조함이 더해진 느낌. 특히 우리가 ‘무얼’ 하는지보단 ‘우리’가 무얼 하는지에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

흠...

미국 가기

우리는 철부지 막내처럼 무조건 세계를 대상으로 할 거라며 미국에 가서 일하겠다고 말해왔다. 한국에서 그런 얘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미국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였던 것 같다.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이 얘기를 자주 했는데, ‘정말 미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었다. 특히 나는 ‘반드시 미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굳이 가서 돈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고객들이 미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거의 다 구글 밋으로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미국에서만 해야 한다는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 우리의 파트너 중 한 팀이 미국의 체류 지원을 해주실 수 있어 월급도 없는 우리에게는 ‘사무실 비용 정도 들어가는 걸로 미국에서 일 할 수 있겠다.’ 상황이 되었다.

누구나 있는 것

도움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체류 지원을 받는 것은 실패했다. 왜 우리가 미국 체류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마 우리의 ‘반드시 가야만 하는 이유’가 다른 팀에 비해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조금 더 우리가 진짜 필요한 팀이라고 어필 할 수도 있었지만, 팀 내부적으로도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걸 잘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던 시기에는 확실한 이익을 얻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지원받는 데 실패한 이후 우리가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공동 창업자 역시 그런 걱정이 있었으나,

  1. 정말 글로벌 비즈니스를 잘하고 싶다고 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인재 밀도가 높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곳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2. 미국인이라면 그냥 거기서 창업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인데 우리가 반드시 미국에서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SF에 가서 뭐라도 하자고 하면서 갔던 다른 창업팀과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팀들에서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배울 점이 있었고,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라고 얘기하셨다. 스타트업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을 무한하게 볼 수 있고 거기서 랜덤한 기회가 너무 많다는 얘기였다. 가끔 이 얘기를 꺼내면 ‘이 어린 철부지들아….’하는 표정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시던 선배분들이 계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단 통계가 내포하고 있는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랜덤한 기회를 탐색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걸고 움직였던 것 같다. 지금은 미국에 온 지 16일 정도가 지났다.

미국 가기 전까지 있던 일

우리가 아이템을 찾는 방식은 4월 이전, 4월부터 7월, 그리고 지금 계속 달라지고 있다. 지금부터 작성하는 얘기는 현재 생각과는 조금 달라진 바가 있지만, 최대한 그 당시 생각으로 기록을 남겨봤다.

2D Animation을 만드는 것

소설 작가의 작품을 2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주는 일은 여러 어려움을 만나게 됐다. 소설 작가분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비주얼 콘텐츠가 생성된다는 점에서 만족도를 느끼셨지만, 이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소설의 팬들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애니메이션이 되었다니!’ 정도로 작품을 봤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도 관심을 받을 정도의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기술 외적인 문제가 있었다.

좋은 퀄리티를 만들어내기에 팀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 우리는 콘텐츠를 많이 즐기던 사람들이지만 만들어본 경험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장면이 어색한데?’ 이런 감은 있지만 어떻게 만들면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 건지에 대한 감이 매우 부족했다. 소설을 비주얼이 메인인 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히 영상을 생성해 준다는 것 말고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 부분을 우리는 연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존 AI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들 역시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웹툰 작가나 소설 작가들처럼 지속적인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이를 연출하는 능력이 아직 부재한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지금 활동하는 AI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가 우리처럼 기술 친화적인 환경의 취미 크리에이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존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상태였다. 아주 아주 극초기 연출, 글, 그림 파트가 나눠지는 웹툰 작가 같은 느낌?

그래서 연출 작가분 한 분을 외주로 모셔 기존 작품을 다시 연출하게 했다. 애니메이션 연출 관련 전공을 하신 주니어 연출 작가 레벨에 외주를 맡겼을 때 우리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퀄리티가 나오긴 했지만, 확실히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우리의 다음 고민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1. 콘텐츠 생산 과정 일부를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후 점차 자동화로 비용을 낮춰간다: 영상 제작이라는 분야는 여전히 AI로 제작하므로 여전히 기존 산업보다는 비용 효율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뭔가 만들어낼 수 있다. Reelshort for Animation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실험해 볼 수 있는 횟수가 너무 적다. 대강 계산해 봤을 때 작품 10개 안쪽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면 망한다.
  2. 저퀄리티, 저관여 콘텐츠를 만들 도구를 모두에게 제공하고 점차 퀄리티를 깎아간다: 기존에 내부 도구를 조금 더 쉽게 쓸 수 있게 깎아 내보내고, 유저들이 Prosumer 역할을 하게 한다. 점차 퀄리티를 높여서 적정 수준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한다. 근데 누가 쓸지 모르겠다.

우리는 첫 번째를 우리가 하는 게 성공 확률이 매우 적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더 잘하는 건 소프트웨어를 깎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꽤 오랜 시간 논의와 고민을 한 끝에 두 번째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Lovable for Video Creation

우리는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도구의 흐름을 따르는 비디오 콘텐츠 생성 에이전트를 만들었다. Video 생성을 위해 BGM을 붙인다든지, 일관성 있는 영상을 연속해서 뽑고 싶다든지, 동일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영상을 만들어내는 등 단순하게 Video 모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워크플로우를 대신 해주는 제품이었다. 미국에 가서 이걸 빌드하고 있기는 싫었기 때문에 2주 동안 빠르게 만들고, 고객들을 찾기 시작했다. 팀 내에서는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가 말로만 하는 설명으로는 모호한 바가 있다고 생각해 뭔가 동작하는 거라도 보여주고 설명해야 유저가 가치를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후루룩 딱딱 만들어낸 버전은 버그투성이에 비디오 생성 과정이 너무 길어 생기는 기술적인 이슈 등 유저에게 온보딩하기가 어려운 수준의 도구였지만, 무슨 느낌인지 정도는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객들은 결과물을 받아보지 않고서는 가치를 못 느꼈고, 미국에 와서도 한 1주일은 버그를 고치는 데 쓴 것 같다.

밑줄친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된 고민이 있다. 정말 그런가?


우리가 처음 타겟했던 고객은 X에서 활동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였다. 이들의 주된 활동은 콘텐츠 생성 AI 제품을 사용해 보고 “It’s cooking”, “It’s over”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들이다. 작은 여러 Examples를 만들어내고, 구독자들에게 Affliates, 강의 등을 판매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짧은 Examples를 올리는 것만 하면 되고 특별히 목적이 있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사실상 우리의 도구가 Veo3 이하의 제품일 뿐 아무 효용이 없었다. 별로 Cooking하지 않은 제품이었다.

그 다음 타겟으로 만나본 고객들은 Tiktok에 저관여 AI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리의 요구 사항과 꽤 잘 맞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우리 도구가 기존에 자신들이 따르던 워크플로우의 컨트롤러를 가져가 버려 자기들이 만들던 영상과 다른 품질의 영상이 나오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렇게나 말해도 잘 알아듣고 만들어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반응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만들어내는 영상의 퀄리티가 매 영상마다 아주 동일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든지, 꽤 정교한 시리즈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 보다는 그냥 재밌는 대사를 치는 빅풋이 나오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제공해 주는 가치보다는 Veo3로 뚝딱 뽑는 것 정도로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3D AI Companion

우리가 다음 고객군을 한참 고민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공동 창업자의 강력한 주장으로 잠시 3D AI Companion을 파보게 됐다. 너무 뜬금없지만, Ani는 Grok을 일본 1위 앱으로 만들어주었고, 사람들이 3D Companion의 바이럴리티가 매우 높아서 빠르게 파도를 탈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올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지금 3D Companion 앱에서는 캐릭터가 Customizable 하지 않지만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Companion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걸로 가보자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Image to 3D model로 만들기 + Rigging + Animation을 만드는 흐름이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 수 있는지 3.5일 정도 크런치 모드로 파봤다.

웃음벨 수준의 귀여운 캐릭터들

결과적으로는 매우 아쉬운 퀄리티에 좌절했다. 3D Companion이라는 것은 비주얼이 핵심적인 서비스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가치를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Lovable for Video Creation의 고객 찾기에 실패한 시점으로 돌아온 상태가 됐다.

지금까지의 일과 생각

우리는 4월부터 지금까지는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재밌어하는 분야’라는 점에 집중했다. 뭐가 문제인가? 라는 질문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향이 주를 이뤘던 것 같다. 그래서 General 한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 찾아보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고 실패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방법은 문제가 좀 있는데, 뾰족하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여기서 가치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들을 찾아내 조금씩 더 뾰족하게 만들기는 엔트리 포인트 찾기가 너무 어렵다. 특히 이런 접근을 해야겠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B2C에 가까워질 때 그런 것 같다.

내부적으로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여러 아이템을 탐색하되 1월~3월에 했던 것처럼 고객이 명확히 정의될 방법으로 돌아가는 걸 고민하고 있다. 여러 문제들을 찾아보기 위해 잠시 SF에서 사람을 더 만나고 새로운 인풋을 받아보기로 했다.

Author

changhoi

Posted on

2025-07-24

Updated on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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